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울루 호베르투 모라이스 주니오르 (문단 편집) === [[인천 유나이티드 FC]] === [[파일:빠울로세레머니.jpg]] 2012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인천은 [[페르지난두 레다]]를 떠나 보내면서 외국인을 추가 영입할 수 있게 되었다. 인천은 [[이보(축구선수)|이보]]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[[네이선 번스]]를 제외하면 두 자리를 더 외국인 영입에 사용할 수 있었고, 그렇게 선택한 선수가 바로 빠울로와 [[소콜 치칼레시]], 두 공격수였다. 소콜에 비해 빠울로는 사실 경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던지라 큰 기대감이 있는 영입은 아니었다. 그러나, 빠울로는 데뷔전 단 한 경기로 깊은 임팩트를 남긴다. 2012년 7월 15일에 인천은 [[FC 서울]]과 경인 더비를 치르고 있었다. 이 경기는 이후로도 자주 회자되는 명경기로 남았다. 인천은 [[김진규(1985)|김진규]]의 프리킥에 먼저 실점을 했지만, [[한교원]]이 비가 내리는 경기장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. 그러나 [[하대성]]이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만드는 득점에 성공하며 경기는 알 수 없게 흘러갔다. 그 와중에 빠울로는 교체 투입을 통해 데뷔했다. 그리고 후반 46분, [[남준재]]가 크로스를 올린 것을 '''빠울로가 헤딩으로 연결해 득점에 성공했다.''' 빠울로의 골은 그대로 결승 골이 되었고, 인천은 극적으로 강적 서울을 쓰러뜨렸고, 다음 날 [[김봉길]] 감독 대행은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는 등, '''단 한 골로, 인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.''' 그만큼 의미있는 경기였고, 의미있는 득점이었다. 아쉽게도 빠울로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었다. 이후로는 경기장에 나와서 인상깊은 플레이를 보이지 못했고, 소콜이 부상에서 돌아와 기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입지가 애매해졌다. 그리고 공격수로 경쟁자는 [[설기현]]도 있었으나 빠울로에게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. 그렇게 시즌이 종료된 후, 빠울로는 인천을 떠나게 되었고 인천은 새롭게 [[디오고 아코스타]], [[티아구 엘리아스]]를 영입하며 이보, 빠울로, 소콜의 공백을 메웠다. 빠울로의 인천 경력은 비록 전체적으로는 실패였으나, 그의 한 차례의 멋진 활약은 인천 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장면이었고, 그래서 인천 팬들에게는 호감으로 남으며 팀을 떠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